제36화
난 무달 첩이다
달래가 살며시 대웅전의 문을 열었다.
아! 머리가 하얀 노승이 앉아 있었다.
일단 안심.
그러나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달래와 분홍은 합장을 하며 들어갔다.
"스님, 죄송합니다."
"빨리 반대편 계곡으로 내려가시오."
"예?"
"빨리!"
"스님, 감사합니다."
"나쁜 영감탱이. 뒤도 안 보고 내쫓아."
"그게 아니야."
달래는 말뜻을 알아듣고
즉시 분홍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마구 내달렸다.
연이어 달래와 분홍을 쫓던 세 사람의 발이 멈췄다.
정안사였다.
고사부는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대웅전 문을 밀었다.
대웅전
그 노승, 혜선사가 여전히 앉아 있었다.
군화을 신은 채 들어오는 고사부.
그러나 등을 진 혜선사는 꼼짝도 않았다.
"이런 곳에 절이 있다니?"
"이런 곳에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오다니?"
고사부의 손이 칼집으로 갔다.
"칼만 믿는 사람은?"
"칼로 죽는다?"
"필연이지요."
예사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리 고사부라도.
주춤.
"내놓으시오!"
"...?"
"찾아서 나오면 노승의 목은 오늘 밤 굶주린 산 짐승 밥이 될 게요."
대웅전 밖.
구석구석을 뒤지는 고사부의 수하.
보고를 했다.
"아무도 없습니다."
"뒷간까지?"
수하들이 고개를 흔들었다.
고사부는 희미하게 웃었다.
"반대쪽으로 갔어. 영리해."
"칼은 사람을 움직일 수는 있지만,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지."
"응?"
난데없이 눈이 펑펑 내렸다.
달래와 분홍은 쌓인 눈을 먹으며
계곡으로 가고 있었다.
"강으로 내려가야지."
"뭐?"
"산에서 얼어 죽거나 굶어주는 것보다는 낫지."
"안 돼. 강에는 병사들이 있어."
"그럼, 여기서 그냥 죽어?"
"여기서 얼어죽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분홍이 나뭇가지를 모았다.
달래가 물그러미 쳐다보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불은 안 된다고 했잖아?"
"언니, 안 그럼 얼어 죽어."
"병사들이 알면?"
"일단 살고 보자고."
명주 실을 나뭇가지에 문질러 능숙하게 불을 피우는 분홍.
놀라운 일.
그러나 둘은 너무 지쳐 있었다.
스물스물 잠이 쏟아졌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아니나 다를까.
연기가 오르는 것을 바라본 강 근처 군졸들.
얼마되지 않아 쓰러진 달래와 분홍 앞에 나타났다.
달래와 분홍은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
"후!"
병졸들의 입이 쭉 갈라졌다.
입에 도는 군침.
"불을 피웠어?"
"다 그래. 요기가 바로 노루목이지. 요기서 얼마나 많은 탈출자들이 죽었는지 알어? 이 칼에."
"그래도 너희들은 살려둘게. 그 대신...흐흐...알지?"
그런데 분홍이 앞으로 나섰다.
놀라는 달래.
"당신들, 어느 나라 병사?"
"응?"
분홍의 자태.
병사들, 이리저리 분홍을 살폈다.
"내가 누군 줄은 아나?"
"응?"
"무달 장군 첩이야. 무달장군의 조강지첩. 알어?"
"뭐?"
"우리 무달장군 첩이 왜 산을 넘어?"
"이 산을 경비하는 너희들 기강이 어떤가 보려고?"
"얘들 정말 웃기네."
"아주 당돌한데."
"정말이야. 나를 한번 봐라. 내가 여느 아낙하고 같은지?"
"보통이 아닌데...일반 아낙하고는 달라."
"우리한테 손 한번 댔다가는 그 즉시로 황천행이야. 여기는 우리 형님."
"장군님 첩이 하도 많아서......근데 이 아낙들 얼굴 보니까."
"빨리 길 비켜. 너희들 이름 알아서 상 줄테니까. 넌 이름 뭐야?"
"갈등."
"넌?"
"등갈."
군졸도 웃고
달래와 분홍도 웃었다.
"우리는 가막골로 가야 되는데...어디로 가야 돼?"
"저쪽으로........"
"알았어. 수고해."
달래와 분홍이 그렇게 손을 흔들고 떠나려는데.
군졸들이 막아선다.
"셈은 하고 가야지?"
"셈?"
"우릴 아주 바보로 아나?"
"응?"
곧바로 분홍을 쓰러뜨리는 군졸.
나머지 한 명의 군졸도 달래의 팔을 잡아끈다.
금세 속옷이 벗겨지는 분홍.
"후!"
"아!"
분홍의 몸매에 놀라는 군졸.
미쳤다.
분홍의 젖 가슴에 코를 박고 버둥거리는 군졸.
옆의 상황도 마찬가지.
활활 타는 모닥불 옆에서.
순식간에 옷이 몽땅 벗겨진 달래.
발버둥을 치는 달래와 분홍
욕심을 채우려고 짐승이 된 군졸 둘.
"뭐, 무달 장군 첩?"
"흐흐흐!"
"우리는 백제 군졸이야. 흐흐흐. 무달 장군 첩?"
"그럼, 난 제신 장군의 정인이다."
"오호!"
"정말이다. 정말!"
그러나 군졸들은 이미 사람이 아니다.
발가벗겨진 분홍과 달래의 몸 위로
다른 두 개의 벗은 몸이 진입한다.
"우릴 살려주면 뭐든 다 할게."
"처음부터 그래야지. 그렇지만 살려둘 수는 없어."
분홍, 누운 채로 몰래 돌을 잡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탄 군졸의 뒷통수를 내려찍는 분홍.
"죽어라!"
"아악!"
퍽 쓰러지는 병졸.
얼결에 달래에게 붙었던 병졸이 칼을 들고 분홍에게 다가가면
뒤에서 발로 밀어버리는 달래.
산 아래로 떨어지는 병졸의 비명이 산을 흔든다.
"으아악!"
재빨리 옷을 입고
무작정 뛰기 시작하는 달래와 분홍.
목이 타서, 너무나 타서 눈을 씹어 먹는
달래와 분홍의 비참한 모습.
강 근처 풀숲에 나란히 쓰러진다.
그들이 내뿜는 허연 입김.
"여기서 죽고 싶다."
"난 싫어."
"사람까지 죽였다."
"사람이 아니야. 난 저런 놈들 백 번이라도 죽일 수 있어. 저기 불빛이 보인다."
"내려가야지."
"저건 군사들 막사야."
"어차피 죽는 것 보다야 낫겠지."
"뭐?"
"여기 있어도 죽어. 가자구. 겁날 것 없지. 저희들도 사내들인데. 우릴 함부로 죽이지는 않아. 언니, 나만 믿어."
안간힘을 다해 걸어 내려오는 달래와 분홍.
눈 덮인 초가.
다행히 군막은 아니다.
새어나오는 불빛이 정겹다.
사랑에서 새끼를 꼬는
중늙은이 형상의 사내.
문을 두드리는 분홍.
어떤 사내가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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