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젖잠이겠지요?
달리고
또 달렸다.
강화도
정수사 옆의 마니암으로.
그가 처음 마니암에 오게 된 것은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내와 만 3년을 살았던
홍제동 집을 정리하고나자
이 세상 어디에도 그가 갈 곳은 없었다.
그가 굳이 마니암에 머물게 된 것은
불교라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교리 때문도 아니었고
덕망 높은 어떤 스님의
훌륭한 법문 때문도 아니었다.
“잘 주무시대요?”
“그대는?”
"꿀 잠! "
"난...?"
"젖 잠이겠지요?"
"잉?"
"아예, 물고 잠들었어요. 애기처럼."
".......?!"
"아파요."
"사랑의 증표!"
그가 그렇게 뻔뻔스럽게 말하자
그녀가 자신의 부푼 젖 가슴을
살짝 마사지.
역시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놀랍도록 아름다운 곡선.
그 동그만 곡선 위를 떠돌던
그의 손과 입은 얼마나 행복했는가?
아들이 죽고
그가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던
몇 권의 책까지 몽땅 정리하고 단 한 권
금강경(金剛經)만을 들고 거리를 헤매던 시절.
그는 아무 생각없이 강화도로 흘러 왔었고
그곳에서 정수사를 증축하는
인부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는 얇고 헐렁한 티셔츠 차림.
얼굴에 화장기도 없다.
“강화가 그리 좋아요?”
"응?"
"그 때도."
"??"
"계단에서 강화 얘기를 했어요."
그녀가 바싹 다가앉았다.
그녀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것으로 차창 밖의 날씨가
아직 개이지 않았다는 걸 짐작했다.
여자의 냄새는 비가 올 때
가장 무성하다는 걸
체험으로 알고 있었다.
또 하고 싶다.
그러나 말을 참았다.
"오른 쪽?"
".......!"
그녀가 오른 쪽 뺨을 내밀었다.
쪼쪽!
그가 볼에 입을 갖다대자
오히려 그녀가 그의 입술을 훔쳤다.
"띠꽁!"
"띠꽁!"
간단한 입 박치기와
코 박치기
처음 마니암에 왔을 때
그 때는
늦은 여름 저녁.
"설레 보여요."
"그대가 있기 때문이겠지?"
"노오!"
"왜일까?"
"혹 냄새 때문 아닐까요?"
그녀가 배시시 웃었다.
바로 그것이었다.
인부들이 천년 묵은 정수사의 서까래를
걷어내고 있었다.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그 천년의 냄새를 맡았다.
냄새 제일.
신라의 인부들이 곧추 세웠던 그 서까래들을
오늘의 인부들이 걷어내던 그 장엄한 모습.
제 수명을 다한 우람하게 묵은
나무향 때문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햐, 이 나무를 천년 전 사람이 만졌어.”
“이 나무를 우리처럼 나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진짜 천년의 냄새가 나는구먼.”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
몸을 써야하는 막노동꾼들도
잠시 담배를 피우면서
천년 전의 사람들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는 겹겹 실려나오는
그 나무들을 보면서 가슴 가득 차오르는
희열을 억제할 수 없었다.
한낱 나무도 마지막에
저리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을 수 있는데?
근처의 여관방에 몸을 눕히고도
그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충격이었다.
눈 앞의 것만에 사로잡혀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자신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천년의 세월.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는 이 나라에서 법당문이 가장 아름답다는
정수사로 달려왔던 것이다.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완전히 미친 짓이었다.
그러나 정수사에서는 머물 수 없었다.
머리를 깎은 운수납자도
함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주지스님의 방침이었다.
그는 애걸했다.
죽은 아들을 팔았다.
그 비열한 눈물에 딱했던지
주지스님이 정수사 너머
바닷가 마니암을 추천했다.
그는 당장 마니암으로 달려갔다.
명진당이 혼자 있는 절이었다.
그는 흔쾌하게 그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작은 법당에 들어와 향내를 맡으면
그대로 천년만년 주저앉아 지내고 싶었다.
법당 앞으로 쏟아지던
햇볕, 눈보라!
더구나 함허 대사가 발견했다는
법당 서쪽의 샘물은 그에게는
그대로 감로수였다.
그는 하루에 두 번
그 물을 직접 떠서 먹는 것으로
그 날의 일과를 시작하고 마감했다.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법당을 쓸면서
아랫녘 오솔길로 난 돌계단을 걸으면서
간 밤에 본 서적의 내용을 되새김한 아름다운 날들.
그의 방황이 끝난 것은
아들이 죽은 지 꼭 3년 되던
그 가을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녀를 몰고
한밤중.
그 마니암에 와 있었다.
불경스러운 일.
그녀의 폴로스코프
까치구멍집.
그리고 그곳에서
그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고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반강제적이기는 했지만
그녀도 거부하지는 않았다.
"대신 공연 마지막 날은 함께?"
"목포로?"
"그렇지요."
"그 때까지 무방비?"
"마음대로 하세요. 마음대로!"
뼈가 저렸다.
이 세상 누가 저리 말할 수 있는가?
아무도 없는 마니암.
그가 객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희뿌연 달빛이 한 가득.
"여기가 우리 집이에요?"
"야아!"
깨끗함.
검박함.
잘 개어진 이불 두 개.
목침의 베개 하나.
그 외엔 아무 것도 없다.
한 쪽 다리를 저는
명진당은 어디 갔을까?
어, 그런데 한 쪽 구석에
이상한 병 하나.